2013년 11월 19일 화요일

중소기업 외면하는 석·박사 연구원들

http://media.daum.net/economic/newsview?newsid=20131119060308464

미래창조과학부가 최근 발표한 '2011년도 연구개발활동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연구원 37만5176명 중 기업체 근무 연구원은 25만626명(66.8%)에 달한다. 기업규모별로 보면 52.7%가 대기업 소속이고, 중소기업은 25.4%, 벤처기업은 21.9%다. 통계상으로 보면 국내 기업 연구 인력의 47.3%, 약 절반 정도가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에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들과 벤처기업들은 한 목소리로 '연구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입을 모은다. 통계 수치와 기업 현장의 체감 온도 차이는 도대체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근무환경 열악한 중소기업 외면하는 건 '당연'"

"석·박사 연구원들이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금전적 대우뿐 아니라 연구환경, 복지 등 모든 조건에서 대기업이 월등히 앞서는데 중소기업으로 가는 게 이상하죠."

서울 주요 대학의 대학원생인 A씨(컴퓨터공학과 박사과정)는 "석·박사 연구원 가운데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사례를 거의 본 적이 없다"며 "교직이 아닌 취업을 택한다면 대기업 또는 공공연구기관에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실상을 전했다. 그러면서 "취업난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은 연구원 채용을 늘리고 있는 추세"라며 "대기업 채용이 크게 줄어들지 않는 이상 중소기업은 인력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석·박사과정을 밟는 대학원생들은 기업체와 공동으로 기술개발 및 이전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해당 기업체의 근무환경을 인식하는 게 보통이다. 이 과정에서 열악한 중소기업의 근무환경이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에 대학원생들은 중소기업 취업을 최우선적으로 배제하게 된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건국대 대학원생 B씨는 "석·박사 연구원들은 학업기간이 긴만큼 취업에 대한 기대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며 "중소기업은 연봉도 낮은 데다 복지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곳이 많아서 지원 자체를 꺼리게 된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해당 분야 전문가가 되기 위해 20년 넘게 투자하고 공부에 매달려 왔는데 중소기업을 선택하는 것은 자폭에 가깝다는 것.

◇박사 연구원 기업체 근무비율 19.7%…"대학이 목표"





'2011년도 연구개발활동조사보고서' /자료= 미래창조과학부.
실제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연구개발비 차이는 현격히 차이가 난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연구개발비 비중은 대기업 74.2%, 중소기업 13.7%, 벤처기업 12.1% 등이다. 대기업의 연구원 1명당 연구개발비가 상대적으로 높아 중소·벤처기업을 기피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한 자동차부품업체 대표는 "회사를 운영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제대로 된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라며 "특히 고급 R & D 인력은 대기업을 선호하기 때문에 간접적이라도 대기업과 연관되지 않은 기업은 아무리 유망해도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학력자의 취업이 어렵다곤 하지만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경향은 여전하다"고 덧붙였다.

더군다나 학위가 높아질수록 기업체보다는 대학에서 연구를 지속하는 경향이 있어, 중소기업들이 박사 연구원을 채용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깝다. 학사 연구원과 석사 연구원 중 각각 95.8%, 58.6%가 기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반면, 전체의 22.6%를 차지하는 박사 연구원의 기업체 근무비율은 19.7%에 불과하다. 64.1%가 대학에 상주하고 있으며, 공공연구기관에서 일하는 박사 연구원은 16.2%다.





'2011년도 연구개발활동조사보고서' /자료= 미래창조과학부.
박사 R & D 인력들이 기업체보다 대학을 선호하는 이유는 상당수가 교수직을 원하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학원생 A씨는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이들 중 대다수가 교수가 되는 게 일차적 목표"라며 "병역특례 때문에 중소기업에 잠시 근무하는 경우도 있지만, 취업을 한다면 당연히 대기업으로 간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A씨는 "석사에 머무르지 않고 박사과정을 밟는 이유는 자기 연구를 더 하고 싶기 때문인데 기업체에 들어가면 그게 어려워 대학이나 공공연구기관으로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학은 SCI 논문에만 매달려…기본적인 연구환경만 갖춰도"

고급 연구개발(R & D) 인력의 중소기업 기피현상은 우리나라의 기술경쟁력 발전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이들이 중소기업을 외면한 채 대학에만 머물러서는 정부가 원하는 '창조경제'로 다가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R & D 인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학과 중소기업 간 산학연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상당수 대학교수, 공공연구기관 연구원들은 산학연보다는 SCI(국제논문인용색인) 논문 작성에만 매달리는 게 현실이다. 재임용 및 성과 평가에서 SCI 논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단과대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SCI 논문만 많이 쓰도록 강요하는 평가시스템 아래에서는 산학연을 통한 기술산업화에 집중하는 교수가 나오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논문뿐만 아니라 여러 측면의 노력을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평가 지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이 기본적인 연구환경을 마련하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서강대 공대의 한 교수는 "지도교수가 벤처기업을 차리지 않는 이상 대학원생들이 중소기업에 들어가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며 "무엇보다 대부분 중소기업들이 제대로 된 연구환경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본적인 연구환경만 마련돼도 중소기업으로 가는 석·박사 연구원은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머니투데이 서진욱기자 sj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