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5일 일요일

[더 지니어스2] 홍진호 인터뷰

환한 미소와 함께 인터뷰에 응한 홍진호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반전, 물고 물리는 치열한 두뇌 싸움,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tvN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더 지니어스:룰 브레이커(이하 지니어스 시즌2)는 회를 거듭할수록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아직 신규 프로그램의 포맷 자체가 낯설던 시즌1 당시 쟁쟁한 출연진들 사이에서 가장 빛이 난 주인공은 노련한 방송인 김구라도, 대표적 ‘엄친아’ 이준석도 아닌 홍진호였다. 

지난 2000년부터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로 활동해온 홍진호는 선수 시절에도 ‘2인자’, ‘콩’, ‘황신’ 등의 친근한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은퇴 후에도 리그오브레전드(이하 LOL) 게임단인 제닉스 스톰의 감독으로서 게임과의 질긴 연을 이어왔다. 10년이 넘도록 e스포츠 업계를 벗어난 적이 없었던 홍진호의 갑작스러운 방송인 데뷔 소식에 우려를 표한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결과는 ‘대박’ 그 자체였다. 

게임에 대한 높은 집중력과 남다른 이해도, 어리바리한 미소 뒤에 숨겨진 게이머 특유의 승부사 기질, 솔직하고 엉뚱한 성격에서 빚어진 새로운 예능 캐릭터 등은 홍진호의 인지도를 끌어 올렸고, 급격히 치솟던 인기는 그가 시즌1 우승을 차지하며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두 번째 도전, 우승자만의 여유까지 갖춘 홍진호는 ‘무적 포스’를 뽐내며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별 감흥 없는 표정으로 “저는 제가 그렇게 뛰어난 것 같지 않아요. 그냥 다른 분들이 아직 집중을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라는 말을 덤덤히 늘어 놓는 게 홍진호다. 스스로 “새해 소망은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찾아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라 밝혔듯 여전히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있는 그를 만나 더 지니어스 우승자, 제닉스 스톰의 프론트, 그리고 인간 홍진호로서의 삶은 어떻게 다른지 묻자 역시 그다운 솔직한 답변이 되돌아 왔다. 준비 단계였던 작년에 이어 2014년에는 더 높이 도약할 준비를 마친 ‘대세남’ 홍진호의 새해 첫 인터뷰를 지금부터 확인해 보자.

◆ 제 2의 인생을 살다! ‘지니어스’ 홍진호
더 지니어스 시즌1 우승자 홍진호, 현재 시즌2에도 출연 중이다
 
- 이젠 ‘방송인’이란 수식어가 더 익숙해졌네요. e스포츠 팬들에겐 이미 익숙한 얼굴이지만, 그래도 인사부터 부탁 드릴게요.
▶ 안녕하세요, 홍진호입니다. 요즘은 제가 프로게이머도 아니고 방송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해서 뭐라고 소개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이것저것 하고 있는 홍진호’라고 소개해야겠네요(웃음). 방송에 나와 명성을 얻게 되니 설레는 면도 있고, 불안한 것도 있고 그래요. 아직은 부족한 게 많은데, ‘더 지니어스’에서 힘을 발휘하다 보니 뭔가 갑자기 주목을 끌면서 덩달아 기대치가 커진 느낌이에요. 그래서 가끔은 잠수를 타고 싶기도 해요(웃음). 방송인이라고 불리기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많은 분들께서 좋게 바라봐 주시니까 감사하고,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진 몰라도 열심히 해보려고 해요. 

-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였던 ‘더 지니어스’란 프로엔 어떻게 섭외가 된 거예요? 
▶ 처음엔 굉장히 우연찮게 섭외가 됐어요. 은퇴를 한 후에 쉬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놀고 있었는데, 생뚱맞게 전화 한 통이 왔어요. 섭외 때문에 전화를 드렸다고 말씀하셨죠. 그 당시 저는 방송에 대한 욕심은커녕 관심도 없던 상태였고, 노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컨셉트에 대한 설명을 듣는데 막 당기더라고요. 그런 류의 방송이 지금껏 없기도 했고, 각 분야에서 최고라는 사람들이 모여서 어떠한 주제를 두고 헤쳐 나가는 서바이벌 예능이라니 ‘내 전문 분야는 아니지만 뭔가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 싶어서 곧바로 출연하겠다고 말했었어요. 지니어스 PD 형이 아직도 두고두고 그때 일을 말하곤 해요. 시즌1 출연자 섭외 때 그렇게 대뜸 수락한 사람은 제가 처음이었다고요. 제 출연이 확정 되고 두 번째 출연자가 수락하기 전까지의 텀이 좀 있었대요. 그래서 더 고마웠다고 하더라고요. 

- 벌써 두 번째 시즌인데, 첫 시즌을 치를 때와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 게임 자체는 시즌1이나 시즌2나 똑같이 어려운데, 시즌1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가 공개될 때마다 더 많이 당황했던 것 같아요. 게임에 대해 대강 이해하고 와도 막상 그런 상황이 다가 오니까 당황을 하더라고요. 저는 그런 대혼란 속에서 중심을 잘 잡은 편이라 기지를 발휘할 수 있었는데, 시즌1을 지켜봐 왔던 사람들이 시즌2에 합류하니까 서서히 활동 영역이 제한되고 있어요. 시즌1에서는 사실 다들 저를 얕봤을 거예요. 사전 정보가 가장 없는 플레이어라 간과한 거죠. 덕분에 전 그만큼 움직이기가 편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다들 저를 견제하니까 제대로 싸울 준비를 하기 조차 힘들어요(웃음). ‘일단 홍진호는 죽여야 된다’고들 뜻을 모으니까 게임을 풀어 나가기 힘든 부분이 있죠.

- 이미 한 차례 우승을 거머쥐었는데, 시즌2에 다시 도전하게 된 이유는 뭔가요?
▶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굳이 꼽자면 그냥 재미 있어서? 지니어스 게임이라는 게, 처음에 설명을 들었을 때부터 마음에 들어 출연을 수락했듯이 저에게 있어서는 정말 재미있는 놀이에요. 그래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흔쾌히 시즌2에도 출전하게 됐죠. 시즌1에서 우승을 했기 때문에 여차하면 이미지를 구길 수도 있다고 걱정들을 하시는데, 개인적으로 저는 원래 ‘하고 싶은 건 하자’는 주의라 일단 질러 놓고 후회는 나중에 하는 성격이에요(웃음). 가만히 보면 아시겠지만 시즌2가 더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잖아요. 지저분하고 더러운 모습들이 나오기도 하고, 또 제가 ‘공공의 적’ 위치에 있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생각지도 못한 힘든 점들이 있긴 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에요(웃음).

- ‘출연진 중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기도 한데요.
▶ 저는 제가 그렇게 뛰어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다른 분들이 아직까지는 게임에만 온전히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거 같아요. 대표적으로 (임)요환이 형이 그래요. 개인적으로는 요환이 형이 무슨 생각으로 여기에 나왔는지 모르겠어요(웃음). 평가절하 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정말 머리가 좋은 사람이란 걸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지금은 다들 게임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요. 게임 속에 숨겨진 룰을 이용해야 하는데, 사람 하나에 집중해서 연합을 해 버리고 파벌을 만들고 하니까 그런 부분들은 조금 아쉽죠. 

예전에 시즌1 당시에는 문제가 공개되면 서로 개인적인 시간도 갖고, 게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개인 노트를 갖고 와서 게임을 복기 한다든지 하면서 자기만의 필승법을 찾았는데, 시즌2는 일단 “모여, 모여” 해버리니까(웃음). 출연자들의 방향성이 엇갈리는 면이 없지 않아요. 무작정 팀을 짜는 것보단 먼저 게임 룰을 살피고 혼자 하는 게 좋은 건지, 다수가 유리한 건지, 아니면 많이 모일수록 손해고 두 세 명만 모이는 게 이득인지를 생각해야 되는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을 하다간 이미 늦어 버려요. 고립되고 말더라고요. 어쨌든 결론은 ‘내가 뛰어나다기 보단 아직까지 다른 사람들이 집중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거예요.

재기 넘치는 문제 해결 능력을 선보이며 승승장구 중!
 
- 많은 게임들이 있었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대결은 무엇인가요?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건 ‘인디언 포커’부터가 아닐까 싶은데요.
▶ 시즌1에서는 기억에 남는 게 많아요. 그만큼 재미 있었으니까요. 음, ‘인디언 포커’라… 그 때는 재미있었다기 보단 한번쯤 다시 마음을 다지게 된 계기랄까? 그 전까지는 저도 어리바리한 상태로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했었는데, 딱 그 때부터 ‘내가 정말 좋아했던 (김)구라 형도 여기서는 적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저 사람을 떨어트려야 내 영역을 확보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한 날이었어요. 

제가 제일 재미있었다고 기억하는 경기는 성규(인피니트)랑 했던 데스 매치에요. 실제 게임 시간만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걸렸는데, 굉장히 팽팽했어요. 처음엔 몰랐는데 성규가 되게 영리하고 똑똑한 친구더라고요. 발톱을 숨겼던 거였어요. 선배님들이 워낙 많이 있으니까 초반엔 조용히 따라만 다녔는데, 후반으로 가면서 서서히 본성을 드러낸 것 같아요. 유리했다가 역전 당하고, 불리했다가 역전해내고 하는 과정이 계속 반복돼서 프로게이머 시절이 떠올랐을 정도에요. 키보드나 마우스는 없었지만, 서로의 심리를 읽는 플레이가 마치 프로게이머들 간의 싸움 같았죠. 

- 게임을 할 때와는 또 다른 긴장감이 들 것 같아요. 데스매치 같은 경우는 특히나 더요. 물론 연승 행진을 달리긴 했지만요. 
▶ 저도 신기해요. 운과 실력이 모두 따라준 결과인 것 같아요. 대표적으로 구라 형과의 경기 때는 운도 따랐지만 제가 조금 더 높은 집중력을 보였던 것 같고, 성규나 (박)은지 씨랑 한 것들도 마찬가지에요. 기본적으로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승부에 대한 열망이나 결의’가 그 누구보다 컸기 때문에 더 좋은 결실을 맺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그런 건 프로게이머 시절에 단련이 많이 된 부분이라 자신 있었죠. 애초에 섭외를 수락할 때부터 우승을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온 거라 게임에 임하는 자세나 목적 의식이 남들과는 달랐던 것 같아요. 태생적으로 조금 더 승부사의 기질이 있었다고 할까요?

- 지난 4회차 방영 후엔 한 동안 커뮤니티가 시끌시끌했죠. 당시 경쟁 의식을 잃지 않으면서도 ‘의리’를 지키는 소신 있는 모습으로 호감을 사기도 했는데요.
▶ 원래 제 성격 자체가 그래요.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저도 조금 더 부담스러워지고, 불편해진 면도 있어요. 그날 이후로 제가 무슨 ‘정의의 상징’이라도 된 듯이 포장이 돼 있더라고요. 솔직히 저도 앞선 방송에서 모순된 말을 하거나 되돌아 봤을 때 후회되는 행동들을 많이 했어요. 실수투성이의 불완전한 사람인 제게 자꾸만 좋은 평가들이 따라붙고 있는 것 같아서 요즘 조금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에요. 지난 주 방송에서도 제가 불편함을 표시한 건 나머지 출연진들과 제 뜻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지, 남들이 틀렸다는 건 아니었거든요. 다른 분들이 내린 그런 선택을 굳이 존중해주진 않더라도 나쁘게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냥 그날은 제가 추구하는 바랑 상황이 판이하게 흘러가다 보니까 스트레스가 확 쌓였던 것 같아요. 

- 아무래도 방송이다 보니 더 극적으로 포장된 감도 있겠네요. 평소 SNS를 통한 교류가 활발해 보이던데, 출연진들끼리는 많이 친해졌나요? 
▶ 시즌2에서는 아무래도 집이 가까운 (이)두희랑 가장 친해요. 얼마 전 탈락한 (이)다혜랑도 친하고요. (이)상민이 형은 시즌1에서부터 인연이 이어져 왔고, 여러모로 잘 맞죠. 같이 게이머 생활을 했던 (임)요환이 형이랑은 어떠냐고요? 그냥 요환이 형하고는 높은 데서 맞붙고 싶단 생각뿐이에요(웃음). 이왕 임요환과 홍진호가 동반 출연할 거면 ‘임진록’은 높은 라운드에서 성사되는 게 재미있지 않겠어요?

영원한 라이벌인 '황제' 임요환과의 동반 출연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 실제론 두루 친한 관계를 유지 중이지만, 이미 모두로부터 ‘경계 대상 1호’로 점 찍혔던데요?
▶ 그런 점에 있어서 부담감과 서운한 감정이 정말 커요(웃음). 제 스스로는 저를 과대평가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같이 하려면 할 수 있는데, 혼자 힘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수 적으로 밀어 붙이려고 하니까 불편할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종종 ‘그냥 승부 좀 하면 안 돼?’라는 생각이 들고, 저를 아예 꼼짝도 못하게 만들거나 배척하려는 분위기가 느껴질 때도 있어서 서운하죠. 어쨌든 저도 ‘전투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요환이 형한테도 약간 섭섭한 게 있어요. 그래도 한땐 동료였으니까 가끔은 저한테 와서 힘을 합쳐 보자고, 어려운 곤경을 함께 헤쳐나가자고 해도 될 텐데 그런 상황이 되면 그쪽 무리에 같이 껴서 저를 죽이려고 하니까요(웃음). 지니어스 게임에 대처하는 방향이나 스타일이 제각기 다르다는 건 알지만, 저도 흔히 말하는 ‘친목적인 분위기’ 때문에 탈락하기는 싫거든요. 사실 전 시즌2에서 목표한 바는 이미 이뤘어요. 전 시즌 우승자니까 1라운드에서만 떨어지지 말자고 다짐했거든요. 그건 어쨌든 성공 했으니까 만족스럽고, 더 높이 올라가고픈 욕심 같은 건 없어요. 다만 시즌2에 거리낌 없이 다시 출연할 마음을 먹게 된 계기처럼, 이왕이면 더 즐기고 싶을 뿐이에요. 떨어져도 좋으니까 즐겁고 가뿐한 마음으로 남은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요. 

- 혹시 앞으로 지니어스 게임 외의 방송에 출연할 계획이나 욕심은 없나요? 
▶ 얘기 중인 건 꽤 있어요. 그런데 요즘은 저도 저를 잘 모르겠어요(웃음). ‘얘가 뭘 하려는 거지?’라는 생각만 하고 있죠. 원래부터 하고 싶은 건 하자는 스타일인데 방송도 게임도 다 재미있고, 마냥 놀고 싶기도 해서 고민이에요. 아직도 어리다면 어린데, 어느 한 곳에 ‘올인’ 해야겠다는 결단을 못 내리고 있다고 할까요. 아직 프로게이머를 할 때만큼의 열정을 쏟을 만한 분야는 없어서 일단은 다양한 곳에서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게 최선인 것 같아요. 제 생각과 완전 반대되는 것만 아니면 뭐든 해볼 생각이에요.

◆ 제닉스 스톰의 정신적 지주, ‘프론트’ 홍진호
제닉스 스톰을 직접 응원 오기도 했던 홍진호
 
- 제닉스 스톰에서 대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팬들이 정말 많아요. ‘프론트’라는 역할을 생소해하는 분들이 꽤 있죠?
▶ 경기에 대한 조언을 해주거나 하는 부분은 김갑용 감독님이 맡고 계시기 때문에, 저는 똑같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선수들이 제대로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이나 장비 등의 지원을 도와주고 있죠. 워낙 좋아하는 분야다 보니까 모두 잘 됐으면 좋겠고, 그런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어요. 제가 감독을 할 때 놓쳤던 부분도 많고 해서, 팀원들은 바뀌었지만 미안한 마음에 한 번씩 더 돌아 보고 있어요. 

- 처음 맡아본 게임단 감독직은 어땠어요? 본인과 잘 맞는 직업이었는지요?
▶ 하기 전에는 굉장히 자신 있었어요(웃음). 같은 프로게이머 출신이니까 누구 보다 선수들의 마음도 잘 알고, 헤아릴 수 있을 거라 자신했죠. 그런데 막상 감독 입장이 돼 보니까 어렵더라고요. 선수들과의 이해 관계에 있어서도 저는 이해하지만 그 친구들은 이해를 못하고, 이게 당연한 거라 생각해서 추진했는데 알고 보니 그건 나한테만 당연한 거였고… 여러모로 많이 부족했죠. 감독보다는 게이머의 피가 남아있을 때라 그랬는지, 욕심이 커서 너무 강제 주입만 고집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은 ‘다시 감독이 되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싶기도 해요. 워낙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후회가 크지 않고,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되지’ 하는 성격이라 그런가 봐요. 사실 첫 도전은 실패라고 부를 만했지만, 그다지 마음에 담아두진 않았어요. 지금 당장 생각해보고 있진 않지만 만약에라도 다시 감독을 맡게 되면 정말 잘할 것 같아요(웃음). 

- 제닉스 스톰의 창단 멤버들과는 아직도 연락을 하고 지내나요?
▶ ‘매니리즌’ (김)승민이랑은 아직도 자주 연락해요. 그나마 제 이야기를 가장 잘 이해하고 들어주던 친구죠. 승민이의 타고난 성격이 싹싹하기도 한데, 그 보다 다른 선수들은 팀 활동을 해본 경험이 없어서 더 다루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PC방에 있던 친구들을 급하게 하나 둘 데려왔더니 이것저것 이해 시키기가 힘들었는데, 승민이는 게이머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잘 통하더라고요. 음, 그리고 요즘 SK텔레콤에서 활약 중인 선수들은 바빠서 연락이 안 되고, ‘스브스’ (배)지훈이는 뭐 하고 지내려나 모르겠네요. ‘메이’ (강)한울이는 군대에 갔고요. 

- 현재는 마찬가지로 전 프로게이머 출신인 김갑용 감독이 팀을 이끌고 있죠. 원래 친분이 두터운 사이인가요?
▶ 제닉스 스톰에 김갑용 감독을 소개해준 사람도 저예요. 오래 알던 사이죠.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LOL 감독 자리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실제로 다른 팀에서 코칭 스태프를 뽑을 때도 여러 번 지원했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엔 김갑용이란 게이머가 정말 잘 나갔던 시절이 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졌잖아요. 그렇게 인지도가 낮아진 상태라, 하고자 하는 열망이 큰데도 자리를 잡지 못해 아쉬워하는 모습을 봤어요. 그래서 마침 제가 감독으로서는 너무 부족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중이라 팀 측에 추천을 했는데, 지금 보니까 굉장히 잘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스럽고 뿌듯해요.

선수 시절 한 팀에서 활동했던 '영웅' 박정석 감독과 '폭풍' 홍진호
 
- 한솥밥을 먹었던 스타 게이머들이 LOL 판에 많이 넘어왔죠. 박정석 감독, 강민 해설 등과 만나면 어떤 대화를 나누나요?
▶ 서로 일 적이 부분에 투자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만날 일이 많지는 않아요. 정석이나 민이나, 또 같은 게이머 출신의 해설위원인 (김)정민이도 워낙 오랫동안 함께 했기 때문인지 1년 만에 만나도 어색하지가 않아요. 바로 어제 본 것처럼 똑같이 편하게 얘기하고, ‘지니어스 잘 보고 있다. 그런데 네가 그렇게 잘하다니 정말 말도 안 된다’ 하며 시비도 걸곤 하죠(웃음).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같이 보낸 친구들이라 그런지 아직도 투닥 거리는 게 일상이에요. 새해가 되고 나서도 다른 사람들한텐 새해 인사 메시지를 보내는데, 그 친구들한텐 따로 연락 안 해요(웃음). 그만큼 편한 사이죠. 

- 요즘도 게임은 열심히 하고 계시죠? ‘하스스톤’ 같은 신작 게임들도 즐기는 걸로 아는데, 여전히 게임에 대한 감은 좋은 편인가요?
▶ 최근에는 하스스톤에 완전히 미쳐 있어요. 아직 베타 상태라 카드가 조금 부족해서 아쉽긴 한데, 완성도가 높아서 정말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랭킹 시스템이 도입돼서 최고 랭킹을 찍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1위 되기가 힘드네요. 게임에 대한 감이요? 언제나 자신 있죠. 저는 확실히 센스가 있는 것 같아요(웃음). 카드 게임 장르는 처음 접해봤는데, 일단 배우기가 쉽더라고요. 지금도 꾸준히 상위 랭커로 지내고 있는 걸 보면 게임에 대한 감각은 여전히 좋은 것 같아요. 

하스스톤 이전에 푹 빠져 있던 LOL은 시즌3부터 손을 뗀 상태에요. 시즌2 후반에 겨우겨우 다이아까지 올려놓고 만족스러운 상태였는데, 얼마 동안 게임을 쉬었더니 그새 강등이 됐더라고요. 보상을 확인하려고 한참 만에 들어갔다가 다이아가 아닌 플래티넘 테두리가 쳐진 걸 보고 확 ‘빡’이 쳐서 그만 뒀어요(웃음). 그때쯤에 하스스톤을 접한 게 패인인 것 같아요. 다른 게임에 빠져 잠깐 잊었더니 처참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물론 시즌3가 된 이후로도 몇 판 해보긴 했는데 플래티넘 테두리로는 영 흥미가 안 붙어서, 요즘은 철저한 ‘시청자 모드’로 지내고 있어요(웃음).

◆ 어느덧 30대, ‘인간’ 홍진호의 2014년은?
'올 해 목표가 뭐냐고요?', 질문을 듣고 깊은 고민에 빠진 모습
 
- 방송과 게임 관련 얘기를 하다 보니 ‘인간 홍진호’에 대한 궁금증도 생기는데요. 쉬는 날엔 주로 무엇을 하고 지내나요?
▶ 기본적으로는 게임을 많이 하는 편이고, 요 근래에는 신년 시즌이다 보니까 송년회니 망년회니 이런 모임에 자주 나갔죠. 평소엔 주로 집에 있어요. ‘방콕’을 좋아해서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하죠. 최근에는 ‘응사(응답하라 1994)’를 챙겨 봤었어요. 사실 대부분의 시간은 컴퓨터 앞에 붙어 있죠. 워낙 오래 같이 하다 보니까 컴퓨터 앞이 편하더라고요. 

- 프로게이머로 활동했을 때보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많이 올랐죠. 길에서 알아보는 팬들도 많아졌을 것 같은데요.
▶ 정말 그래요. 그런데 전 적응을 빨리 하는 편이라 낯설거나 하진 않고, 그냥 되게 기분이 좋아요. 알아봐 주시면 당연히 기쁘고, 그만큼 내가 열심히 했다는 증거니까 뿌듯하기도 해요. 다만 간혹 불편한 자리에서 아는 척을 하는 분들이 있으면 조금 그렇긴 해요. 뭐 그래도 대체적으론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대가 같기도 해서 반갑게 생각하고 있어요.

- 82년생, 만으로 31살이라 주변에서 ‘혼인 적령기’라는 이야기도 많이 할 것 같은데요. 조금 뜬금 없지만 장가가는 모습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 지금 여자친구가 없기도 하지만, 저는 애초에 결혼에 대해 급하게 생각하질 않았어요. 서른 중반은 돼야 생각해 볼 것 같네요. 지금 하는 일들이 있다 보니까 친구들이나 가족들도 압박을 하지 않아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정말 제 주변에 있는 전 프로게이머 동료나 관계자들은 많이들 결혼했네요(웃음). 

- 영원한 라이벌인 임요환 씨는 프로 포커플레이어로의 변신을 선언했는데, 본인의 향후 목표는 무엇인지 밝힐 수 있나요? 홍진호의 ‘아이덴티티’를 궁금해하는 팬들이 정말 많아요.
▶ 계속 고민 중인 부분인데, 현재로썬 요환이 형처럼 ‘나는 XXX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말로 이것저것 다 하고 싶은 상태 거든요. 다 자신 있는 게 아니라 다 자신이 없어서 다 해보고 싶은 거죠. 일단 부딪혀 보면서 그 안에서 답을 찾고 싶어요. 요환이 형은 이런 과정을 이미 다 겪어본 건지 아니면 혼자 생각을 해보면서 해답을 찾은 건지 모르겠지만, 저는 많은 것들을 경험해 보고 제게 맞는 걸 찾고 싶어요. 게임이 좋아서 모든 걸 걸었던 시기처럼 확 당기는 건 아직 못 찾았거든요. 그래서 가능한 한 많은 걸 해보고 싶죠.

벌써 30대인데도 아직 어려요, 제가(웃음). 개인적으로 1, 2월 중에는 뭔가 제 안에서 정리를 한 뒤 또렷한 목표 정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은 제게도 한창 애매한 시기거든요. 모두에게 문제점으로 지적 받고 있는 ‘딕션(발음)’ 등도 그렇고 방송인으로서도 아직은 준비가 덜 됐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고, 다음 목표를 정하려고 해요. 딕션 얘기를 하니까 생각난 건데, 저를 성대모사 한 음성도 들어 봤는데 정말 똑같더라고요. ‘세상엔 나 같은 사람이 많구나’ 했죠. 그런데 또 동시에 제가 제 목소리를 들을 땐 몰랐는데, 남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들으니까 순간 ‘아, 내 발음에 문제가 있구나’ 싶기도 했어요(웃음).

'여러분 2014년엔 복도 두 배로 많이 받으세요!'
 
- 이제 막 갑오년 새해가 밝았는데요. 지난 한 해를 돌아봤을 때 스스로에게 몇 점 정도를 줄 수 있을까요? 
▶ 작년의 제게는 그래도 조금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80점 정도? 솔직히 2013년 초중반에는 아무 것도 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완전 웅크리고 있다가 후반에 딱 점프를 한 느낌이랄까? 지니어스 게임 덕분에 다시 한 번 큰 관심을 받게 됐잖아요. 그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이 기회를 잘 살려야 될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열심히 한 부분도 있지만, 어느 정도 운도 따랐죠. 작년 한 해 동안 힘든 일도 많았지만, 결국엔 잘 풀려서 새해를 시작하는 데 있어서 좋은 디딤돌이 된 것 같아요. 

- 그렇다면 앞서 아직 애매모호하다고 밝힌 ‘목표’와 달리, 새해에 이뤄지길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요?
▶ 아까 물어보신 것처럼 ‘홍진호씨가 가장 하고자 하는 일은 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지금은 제가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한 거잖아요. 목표를 잡지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새해엔 하루 빨리 그런 질문에 명확하게 답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어서 찾아서 거기에 몰입하고 싶어요. 자유분방하게 여기저기 오징어처럼 얽혀 있는 게 잠깐은 좋을 수 있어도 멀리 보면 별로니까, 뭔가 집중할 수 있는 걸 찾아야겠다는 생각이에요. 그게 방송이든 게임이든 간에 하루 빨리 마음의 정리가 됐으면 좋겠네요. 

- 늘 그렇듯 솔직하고 유쾌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마지막으로 골수 e스포츠 팬들과 최근 새로 생긴 신규 팬들에게도 한 마디 전해주시죠. 
▶ 새해가 시작되면 다들 다짐을 하잖아요. 저는 진짜로 올 해만큼 많은 다짐을 한 해가 없는 것 같아요. 원래부터 계획하고 싶었던 것도 많고, 지켜봐 주시는 팬 분들이 늘어나서 더 열심히 하고 싶은 오기까지 생겼어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튀어나올지는 저도 모르겠지만, 항상 열심히 할 테니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팬 분들한테는 정말로 마냥 감사할 뿐이에요. 좋게 봐주신 만큼 실망감을 안겨 드리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 열심히 하려고 해요. 지니어스 게임도 꾸준히 많은 시청 부탁 드리고요, 마지막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혜린 기자 rynnn@fomos.co.kr